1. '돈이 디지털이 되면, 달라지는 건 뭘까?'
출근길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QR로 결제합니다. 점심시간에는 편의점에서 샐러드를 사고, 퇴근 후에는 지하철 개찰구에서 핸드폰이나 교통카드를 사용합니다. 익숙한 일상이죠. 그런데 잘 들여다보면, 이 모든 소비에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현금 없이’ 이뤄진다는 점입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서 현금을 꺼내 쓸 일이 얼마나 있을까요? 택시나 식당에서도 삼성페이 하나로 결제가 끝나고, 간혹 현금을 꺼내면 ‘잔돈이 없다’는 말이 먼저 돌아옵니다. 저 또한 삼성페이를 사용하면서 지갑을 아예 가지고 다니지 않는 날이 더 많습니다.
실제로 통계에서도 나타납니다. 한국의 현금 사용 비중은 해마다 줄고 있고, 일본은 2024년 기준 전체 결제의 42.8%를 캐시리스로 처리하면서 정부 목표를 1년 앞당겼습니다. 현금 문화가 뿌리 깊던 일본마저 이 정도입니다.
문제는 이 흐름이 민간 결제 플랫폼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지금 세계 여러 나라들은 ‘정부가 만드는 디지털 화폐’, 바로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현금 없는 사회로 가는 과정에서, 정부가 직접 개입하는 디지털 돈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겁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볼 점이 하나 있습니다.
카카오페이, 토스 같은 간편결제와 CBDC는 겉보기엔 비슷해 보이지만, 그 본질은 완전히 다릅니다.
단순히 '편리한 결제 수단'이 아니라, 우리의 소비 행태와 자산 흐름, 나아가 자유까지도 영향을 줄 수 있는 거대한 변화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CBDC는 단순히 돈이 디지털로 바뀌는 문제를 넘어, 누가 돈을 만들고, 누가 돈의 흐름을 결정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제 그 화두가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오고 있습니다.
2. CBDC란 무엇인가? – 정부가 만드는 디지털 돈
우리는 이미 디지털로 돈을 씁니다. 카카오페이로 커피 값을 결제하고, 토스로 친구에게 밥값을 보내죠. 눈앞에 지폐나 동전은 없지만, ‘내 통장에 있는 돈’을 기반으로 거래가 이뤄지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지금의 디지털 결제는 상업은행이 중간에 서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CBDC, 즉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는 구조 자체가 다릅니다.
말 그대로, 정부가 직접 만드는 디지털 돈입니다.
은행 계좌에 있는 돈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중앙은행이 발행한 디지털 화폐를 국민들이 직접 쓰는 구조죠. 중간에 상업은행이 없어도 됩니다.
이쯤에서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그럼 그게 비트코인이랑 뭐가 달라?"
표면적으로는 둘 다 ‘디지털 화폐’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철학이 완전히 다릅니다.
- 비트코인은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탈중앙화된 구조죠. 누구도 이 화폐를 통제할 수 없습니다.
- 반면 CBDC는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고 통제합니다. 중앙에서 모든 흐름을 관리합니다.
이걸 쉽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비트코인은 “누구도 손댈 수 없는 돈”이고, CBDC는 “정부가 원하는 대로 설계한 돈”입니다.
또 한 가지.
CBDC는 투자 대상이 아닙니다. 비트코인은 가격이 오르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죠. 하지만 CBDC는 언제나 1:1로 고정된 가치를 가집니다. 1만 원짜리 디지털 화폐는 항상 1만 원입니다.
이 말은 곧, 일상에서 현금을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화폐'로 설계되었다는 걸 의미합니다.
정리하자면,
CBDC는 현금의 디지털 버전이지만, 그것이 만들어지고 움직이는 방식은 지금까지의 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규칙 위에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3. 왜 갑자기 CBDC가 이렇게 뜨는 걸까?
조금만 주변을 둘러보면 금방 느껴집니다.
현금을 꺼내 쓰는 일이 점점 드물어지고 있다는 걸요.
카페에서는 모바일 결제, 택시는 카드 아니면 QR, 심지어 전통시장에서도 ‘현금은 불편하다’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이 변화는 가속도가 붙었습니다. 비대면 결제가 폭발적으로 늘었고, 소비자들은 자연스럽게 현금을 지갑에서 꺼내지 않게 됐습니다.
한국은행 통계로도 나타납니다.
현금 사용 비중은 해마다 감소하고 있고, 이제는 ‘현금 없는 사회’가 더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런 변화는 정부와 중앙은행에게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바로 “디지털 결제 시대에, 국가가 여전히 화폐를 통제할 수 있느냐”는 문제죠.
민간 디지털 화폐, 중앙은행을 자극하다
한편에서는 비트코인, 그리고 스테이블코인(USDT, USDC)과 같은 민간 디지털 화폐들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특히 스테이블코인은 달러에 연동된 디지털 자산이기 때문에, 자국 통화가 불안정한 국가들에서는 실질적인 ‘디지털 달러’처럼 사용되기도 합니다.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통화는 국가의 주권 중 핵심입니다.
그런데 국민들이 국가가 발행한 화폐 대신, 민간이 만든 디지털 화폐를 주로 쓰기 시작한다면?
중앙은행은 더 이상 금리 정책이나 통화 공급을 조절하는 데 있어 실질적인 힘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각국 중앙은행이 CBDC를 고민하기 시작한 겁니다.
“정부가 만든 디지털 돈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이유죠.
포용성과 효율성, 두 마리 토끼
CBDC는 단순히 ‘통화 주권’을 지키기 위한 수단에 그치지 않습니다.
정부가 이 기술을 통해 기대하는 건 더 많습니다.
하나는 금융 포용성(financial inclusion)입니다.
은행 계좌가 없는 사람들, 신용카드를 만들 수 없는 사람들도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디지털 지갑을 가질 수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을 통해 금융 서비스의 문턱을 낮추는 거죠.
다른 하나는 글로벌 송금의 효율화입니다.
지금의 해외 송금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수수료도 높습니다. 하지만 CBDC는 이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연간 최대 450억 달러의 비용 절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CBDC는 ‘기술이 먼저 움직인 세계’에서 국가가 다시 주도권을 쥐기 위한 디지털 대응 전략입니다.
그 배경에는 변화된 소비 습관, 민간 화폐의 위협, 그리고 더 넓은 금융 접근성과 비용 절감의 기회라는 세 가지 퍼즐이 동시에 맞물려 있습니다.
4. 편리함 뒤에 숨은 그림자 – 통제 가능한 돈의 시대
CBDC가 단순한 디지털 결제 수단이라면,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습니다.
이미 우리는 카카오페이, 삼성페이, 토스를 통해 모바일 결제를 충분히 경험하고 있죠.
그런데 CBDC가 주목받는 진짜 이유는 ‘프로그래밍 가능한 화폐’라는 점에 있습니다.
돈에 조건이 붙는다?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화폐는 ‘중립적인 도구’였습니다.
누구에게 얼마를 주든, 어디서든, 무엇이든 살 수 있었죠.
하지만 CBDC는 설계 단계부터 다릅니다. ‘조건부 사용’이 가능합니다.
- 사용처 제한: “이 돈은 식료품에만 사용 가능합니다.”
- 사용기한 설정: “이 돈은 3개월 안에 써야 합니다.”
- 지역 제한: “이 돈은 서울시 안에서만 사용 가능합니다.”
실제로 중국은 경기 부양을 위해 유통기한이 있는 디지털 위안화를 도입해 실험했고,
유럽중앙은행(ECB)은 특정 조건을 충족해야만 결제가 이뤄지는 ‘조건부 결제’ 기능을 논의 중입니다.
기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는 정부가 돈의 흐름을 더 세밀하게 설계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감시와 통제는 현실이 된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중요한 변화가 있습니다.
CBDC는 모든 거래가 실시간으로 기록되고, 중앙은행에 보고됩니다.
이건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감시와 통제의 문제로 이어집니다.
- 언제, 어디서, 무엇을 샀는지 정부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고,
- 법원의 판단이나 은행의 절차 없이 중앙은행이 직접 계좌를 동결할 수 있으며,
- 특정한 행동을 기준으로 ‘금융 제재’를 가하는 것도 기술적으로는 가능합니다.
이게 단순한 우려일까요?
2022년 캐나다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을 생각해보시죠.
정부는 백신 반대 시위에 참여한 트럭 운전자들의 은행 계좌를 동결했습니다.
이때도 논란이 많았지만, 당시엔 상업은행과 법적 절차라는 ‘관문’이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CBDC 시대엔 이 ‘관문’이 사라집니다. 직접, 즉시, 그리고 조용히 이뤄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돈을 쓰는 방식이 바뀌면,
그건 단순히 ‘결제의 편리함’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사회의 운영 방식 전체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통제 가능한 돈. 그게 지금 우리 눈앞에 다가온 CBDC의 또 다른 얼굴입니다.
5. 세계는 지금 – 주요 국가들의 움직임
CBDC, 중앙은행이 만드는 디지털 화폐.
이 새로운 흐름 앞에서 각국의 대응은 크게 네 갈래로 나뉩니다.
누군가는 가장 앞에서 실험을 주도하고 있고,
누군가는 기술보다 원칙을 먼저 세우려 하며,
또 어떤 국가는 조용히 인프라부터 깔아놓고 있죠.
지금, 세계는 각자 다른 답을 쓰고 있습니다.
중국 – 디지털로 설계된 국가 시스템
중국은 단연 CBDC 개발에서 가장 앞서 있는 국가입니다.
2020년부터 디지털 위안(e-CNY)을 실제로 실험해왔고,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선 외국인 관광객도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개했습니다.
중국이 보여주는 특징은 명확합니다.
- 경기 부양책도 ‘디지털 위안’으로 지급합니다. 그것도 사용 기한이 정해진 돈, 그러니까 ‘만료일이 있는 현금’이죠.
- 기존 민간 플랫폼인 위챗페이, 알리페이와 연동해 디지털 위안을 자연스럽게 일상 속으로 끌어들입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사용률은 높지 않습니다.
이미 시장에 자리 잡은 민간 플랫폼의 벽이 생각보다 높기 때문입니다.
이건 기술만 있다고 해서 사람들이 돈을 바꾸지는 않는다는 걸 보여줍니다.
유럽 – 기능적 실험, 그러나 수요는 미지수
유럽중앙은행(ECB)은 디지털 유로 개발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습니다.
2030년을 전후로 정식 도입이 검토되고 있죠.
여기서 눈여겨볼 부분은 설계 방향입니다.
- 개인당 보유 한도는 3,000유로 이하로 제한하겠다는 구상
- 조건부 결제 기능을 도입해 특정 상황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 화폐로 설계할 가능성도 언급됩니다.
하지만 문제는 수요입니다.
ECB가 자체 조사한 결과, 시장 수요는 0.0%로 집계됐습니다.
기술적으로 가능한 것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미국 – 기술보다 원칙부터
미국은 아직 CBDC 발행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흥미로운 흐름이 있습니다.
- 먼저 FedNow라는 즉시 결제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이는 CBDC와 유사한 기술 인프라를 깔아두는 작업으로 볼 수 있습니다.
- 트럼프 전 대통령은 디지털 달러에 반대하며, 대신 암호화폐에 집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죠.
미국이 조심스러운 이유는 분명합니다.
프라이버시와 통제, 그 사이 어디에 기준을 둘지를 놓고 내부 논의가 치열하기 때문입니다.
일본 – 캐시리스는 빠르지만 CBDC는 천천히
일본의 현금 없는 사회 전환 속도는 놀랍습니다.
2024년 기준, 전체 결제의 42.8%가 비현금 결제로 이뤄졌습니다.
한때 ‘현금의 나라’라 불리던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입니다.
하지만 CBDC는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기술적 가능성을 검증하는 파일럿 단계이며,
디지털 엔화의 도입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정리하자면
각국의 움직임은 조금씩 다르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가 “디지털 시대에 화폐를 누가 통제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각자의 방식으로 답을 찾고 있다는 점입니다.
CBDC는 단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주권과 자유, 통제의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마다 그 선택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죠.
6. 한국은 지금 어디까지 왔을까?
한국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 이름은 ‘프로젝트 한강’.
단순한 연구 수준을 넘어, 실거래 테스트까지 포함된 CBDC 시범사업입니다.
실거래 테스트, 진짜 쓰는 돈이 될 수 있을까?
2025년.
한국은행은 약 10만 명을 대상으로 CBDC 실거래 실험을 시작합니다.
실험의 무대는 서울과 부산,
사용처는 이디야커피, 세븐일레븐, 교보문고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방문하는 매장들입니다.
결제 방식은 낯설지 않습니다.
은행 앱을 통한 QR 결제.
겉보기엔 지금 쓰는 간편결제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구조는 완전히 다릅니다.
기존의 계좌 이체가 아닌, 중앙은행 기반 디지털 자산이 움직이는 구조입니다.
즉, 정부가 직접 발행한 디지털 화폐가 민간은행의 예금 토큰 형태로 실생활에서 실험되는 것이죠.
조건을 거는 지원금, ‘디지털 바우처’가 온다
이 실험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건
정부 지원금의 조건부 사용 실험입니다.
예를 들어 이런 시나리오가 가능합니다.
- "이 재난지원금은 전통시장에서만 사용 가능합니다."
- "육아수당은 육아용품, 교육비 항목으로만 사용 가능합니다."
- "사용기한은 3개월이며, 이후 자동 소멸됩니다."
이건 단순히 돈을 주는 걸 넘어,
돈의 사용처와 방식까지 설계하는 새로운 형태의 재정 집행 모델입니다.
CBDC의 프로그래머블 기능이 현실화되는 지점이죠.
중앙 집중인가, 분산 설계인가?
기술적 기반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의 CBDC는 분산원장(DLT, 블록체인) 기반으로 설계되고 있습니다.
이는 기존 중앙집중식 방식과 달리
정보가 여러 노드에 분산되어 기록되는 방식을 채택한 겁니다.
다만, 이게 비트코인처럼 완전한 탈중앙을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중앙은행이 여전히 시스템을 총괄하며,
‘통제 가능한 분산 시스템’에 가깝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왜 지금, 왜 이렇게?
한국은행이 말하는 실험의 목표는 분명합니다.
미래 디지털 사회에서의 지급 결제 인프라 구축.
즉, 지금처럼 현금도, 플라스틱 카드도 필요 없는 세상에서
정부가 통제 가능한 안전한 결제 시스템을 선점하려는 의도입니다.
CBDC가 실제로 도입될지는 아직 미정입니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합니다.
한국은 지금, 이 실험을 통해 ‘만약’을 대비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실험의 결과는
우리 일상의 돈 사용 방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는 점입니다.
7. 내 돈, 내 정보는 안전할까?
CBDC가 가진 장점은 분명합니다.
편리하고 빠르며, 정부 입장에서도 통화정책의 정밀도가 높아지죠.
하지만 여기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본질적인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디지털 화폐 시대, 우리의 프라이버시는 과연 보호받을 수 있을까?"
익명성을 지킬 수 있을까?
CBDC가 지금까지의 현금과 가장 다르게 작동하는 지점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현금은 익명입니다. 누가, 언제, 얼마를 썼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CBDC는 설계 구조상 모든 거래가 기록됩니다.
그렇다면 '완전한 익명성'을 보장하는 CBDC는 가능할까요?
기술적으로는 가능합니다.
익명성 보장을 위한 암호 기술, 프라이버시 보호 기능도 존재합니다.
문제는 의지입니다. 정부가 굳이 그렇게 설계할 이유가 있느냐는 거죠.
각국의 딜레마 – 익명 vs 통제
현재 각국 중앙은행은 두 가지 방식을 저울질하고 있습니다.
① 완전한 익명성 보장
- ✅ 장점: 현금처럼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철저히 보호할 수 있음
- ❌ 단점: 자금세탁, 테러 자금, 탈세 등 불법 활동에 악용될 가능성 존재
② 제한적 익명성 (가명성 구조)
- ✅ 장점: 불법 자금 흐름을 추적하고, 정책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음
- ❌ 단점: 정부의 감시와 통제 가능성이 높아지며, 시민의 자유 침해 우려
정부는 왜 '완전한 익명성'을 선택하지 않을까?
CBDC의 핵심 목적은 편리함뿐 아니라
경제를 더 정밀하게 통제하고, 자금 흐름을 추적하는 기능에도 있습니다.
즉, ‘통제력 강화’가 목적이라면 익명성을 완전히 보장할 유인은 작아집니다.
이건 정책적 딜레마이자,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핵심입니다.
아직도 현금이 중요한 이유
일부 전문가들은 "CBDC의 위험이 과장됐다"고 말합니다.
실제로는 개인정보 보호 기술이 도입될 수도 있고, 과도한 걱정일 수도 있죠.
하지만 하나는 확실합니다.
지금 이 순간, 완전한 익명성을 보장해주는 유일한 화폐는 ‘현금’입니다.
우리가 현금을 아예 없애버릴 수 없는 이유는,
단지 결제 수단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자유와 권리를 담보하는 마지막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8. 우리가 알아야 할 선택의 기준
CBDC는 분명 매력적입니다.
실시간 송금, 낮은 수수료, 간편한 결제.
기술은 계속해서 우리 삶을 더 빠르고, 더 효율적으로 만들어줍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하나 떠오릅니다.
"우리가 잃게 되는 건 없을까?"
편리함과 자유는 항상 함께 움직이지 않습니다
CBDC는 편리함이라는 선물을 우리에게 주는 동시에,
보이지 않는 제약도 함께 가져옵니다.
- 금융 프라이버시: 모든 거래 내역이 정부 서버에 실시간으로 기록됩니다.
- 경제적 자유: 특정 목적 외에는 쓸 수 없는 ‘조건부 화폐’가 등장할 수 있습니다.
- 정치적 자유: 어떤 행동이나 의견이 ‘금융 활동 제한’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가 생깁니다.
기술이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동시에,
사람을 관리하는 수단으로도 쓰일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왜 여전히 ‘현금’이 필요할까?
디지털화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면,
현금은 이제 시대에 뒤처진 수단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현금은 ‘자유’ 그 자체입니다.
- 완전한 익명성: 누구에게 얼마를 줬는지, 어디서 썼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 즉시 결제 가능: 인터넷이 없어도, 정전이 돼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 허락이 필요 없는 돈: 누구의 승인을 받지 않아도, 자유롭게 쓸 수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 기술을 지나치게 믿습니다.
하지만 모든 기술은 설계자에 따라 목적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실패 사례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성공은 기술이 아니라, 수용에서 결정됩니다.
이 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아래의 두 나라입니다.
🇳🇬 나이지리아 – 강제는 거부감을 낳는다
- 정부가 eNaira를 강제 도입하려 했지만,
- 국민들은 여전히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더 신뢰했습니다.
-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정부 발행 디지털 화폐는 오히려 외면당했죠.
🇳🇱 네덜란드 – 기술만으로는 부족하다
- 과거 ‘칩크닙(Chipknip)’이라는 디지털 화폐 프로젝트가 있었지만,
- 소비자들은 굳이 새로운 시스템을 쓸 이유를 느끼지 못했고,
- 결국 기존 결제 수단보다 효용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으며 사라졌습니다.
이 둘은 전혀 다른 나라지만,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대중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리 잘 설계된 시스템도 무용지물이라는 것.
결국, 선택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CBDC는 기술 그 자체로 좋다 나쁘다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 기술이 어떤 철학과 목적 아래 설계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집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합니다.
편리함과 자유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사회를 원하는가?
감시와 효율 중 어디에 기준을 둘 것인가?
그 질문에 지금부터 고민하고,
필요한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이유입니다.
9. 우리는 어떤 사회를 선택할 것인가
CBDC는 단지 새로운 결제 방식의 등장이 아닙니다.
이건 돈이라는 시스템 자체를 다시 설계하는 일,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갈 우리의 삶의 방식까지 바꾸는 선택지입니다.
효율과 통제의 경계에서
CBDC는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 효율적인 세금 징수
- 더 정밀한 재난지원금 지급
- 국가 재정의 투명성 강화
하지만 동시에
- 거래의 익명성이 사라지고
- 국가의 통제력이 일상에 더 깊숙이 들어오는 상황도 피할 수 없습니다.
기술은 늘 이중적입니다.
칼은 요리도 하지만 무기이기도 하듯,
CBDC 역시 도구일 뿐, 문제는 그 도구를 누가, 어떻게 쓰느냐입니다.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입니다
아직 한국의 CBDC는 실험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렇기에 지금은 가장 많은 의견을 낼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가 이 주제를 ‘먼 나라 이야기’로 치부한다면
향후 도입되는 제도가 어떤 방향으로 가더라도
그 책임은 어느 정도 우리의 침묵에도 있는 셈이 됩니다.
"결국 기술의 방향은, 시민의 합의가 결정한다."
선택은 늘 우리 손에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회에 살고 싶은가.
그 물음이 지금 CBDC라는 키워드와 함께 다시 떠오르고 있습니다.
- 무조건적인 효율성에 기대는 사회,
- 혹은 자유와 익명성의 가치를 지켜내려는 사회.
이 둘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건
정부나 중앙은행만의 몫이 아닙니다.
그 균형을 어디에 둘지 결정하는 건 결국 우리, 시민들입니다.
함께 고민할 시간입니다
미래의 화폐는 단순한 결제가 아닌
권리와 자유의 구조를 바꾸는 장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질문해야 합니다.
"이 변화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리고 나는 그 변화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제, 생각할 시간입니다.
편리함과 자유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