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은 왜 오르고 내리는가 — 수요와 공급의 경제학
부동산 경제학 시리즈 1부
오늘 점심시간, 김 대리가 스마트폰으로 보고 있던 것은 맛집 지도가 아니라 '호갱노노'였습니다. 연봉은 3% 올랐는데, 찜해둔 아파트는 1년 새 5천만 원이 올랐습니다.
서울에서 집을 사려면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17~20년을 모아야 합니다. 2021년에는 그 기간이 22년까지 벌어졌습니다. 이 숫자가 바로 PIR(가격소득비율)이고, 서울의 PIR은 홍콩과 함께 전 세계 최악 수준입니다.
도대체 집값은 왜 이렇게 오르고, 또 내리는 걸까요? "수요와 공급"이라는 4글자에 답이 있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이번 글에서 그 구조를 하나씩 풀어보겠습니다.
1. 집값을 결정하는 5가지 힘
부동산 가격은 단일 요인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크게 수요 3가지, 공급 2가지 변수가 서로 밀고 당기며 가격을 만들어냅니다.
수요 측: 사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1) 인구와 가구 수
"인구가 줄면 집값 떨어지는 거 아니야?" 많이 하시는 질문입니다. 하지만 핵심은 인구가 아니라 가구 수입니다.
한국의 총인구는 2020년 5,184만 명을 정점으로 줄고 있지만, 1인 가구 급증(2023년 기준 전체의 35.5%)으로 가구 수는 오히려 늘고 있습니다. 비혼, 이혼, 고령 독거가 모두 "방 하나 더"를 만들어내는 셈이죠. 통계청 추계에 따르면 가구 수는 2030년대까지 계속 증가합니다.
다만, 어디에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서울·수도권은 일자리 때문에 인구가 계속 유입되고, 지방 소도시는 빈집이 늘어납니다. 같은 "집값"이라도 서울 강남과 지방 소도시는 완전히 다른 시장인 이유입니다.
(2) 소득 수준
장기적으로 집값은 소득과 연동됩니다. 하지만 2010년대 중반 이후, 서울 집값은 소득 상승 속도를 크게 앞질렀습니다.
| 지표 | 수치 | 의미 |
|---|---|---|
| 서울 PIR(2023년) | 17~20배 | 소득만으로 17~20년 저축 필요 |
| 서울 HAI(2022년) | 31 | 역대 최저, 월소득 40% 이상이 이자 |
| 강남구 PIR | 40~50배 | 사실상 소득으로 접근 불가 |
소득 기반 수요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투자 수요'가 가격을 끌어올린 것입니다.
(3) 심리: "지금 안 사면 영원히 못 산다"
부동산은 금융 자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미래 가격에 대한 기대가 현재 수요에 직접 영향을 미칩니다.
"앞으로 오를 것 같다" → 지금 사야겠다 → 실제로 오른다 → 기대 강화. 이 피드백 루프가 바로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입니다.
2020~2021년의 패닉바잉이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지금 안 사면 영원히 못 산다"는 공포가 2030세대의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매수를 만들었고, 단 2년 만에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이 5.8억에서 8.2억으로 약 40% 뛰었습니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를 손실 회피 편향으로 설명합니다. 집을 사지 않아서 오르는 것을 보는 고통이, 집을 사서 돈을 버는 기쁨보다 2배 이상 크게 느껴진다는 거죠.
공급 측: 집을 얼마나 빨리 지을 수 있는가
(4) 인허가·착공·입주의 시차
스마트폰 수요가 늘면 공장을 돌려 몇 달 안에 공급을 늘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집은 다릅니다. 토지 매입 → 설계 → 인허가 → 착공 → 입주까지 3~5년이 걸립니다. 재건축은 10년 이상입니다.
이 공급의 시차 때문에 부동산 시장은 항상 과잉과 부족을 반복합니다.
실제 데이터를 볼까요? 2023년 전국 착공 물량은 25.5만 호로, 전년(44.5만 호) 대비 42.7%나 급감했습니다. 이 급감은 2026~2027년 입주 절벽으로 직결됩니다. 지금 서울에서 새 아파트를 구하기 어려운 건 3~4년 전 착공이 멈췄기 때문입니다.
| 연도 | 전국 착공(만 호) | 변화율 |
|---|---|---|
| 2021 | 58.5 | +23.3% |
| 2022 | 44.5 | -23.9% |
| 2023 | 25.5 | -42.7% |
| 2024 | 22~28 (추정) | 회복 미미 |
(5) 건설 원가: 집값의 바닥을 정하는 힘
건설사가 원가 이하로 집을 분양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건설 원가는 집값의 하방 경직성(바닥)을 만듭니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철근·콘크리트·인건비가 폭등하며, 건설공사비지수는 2015년 대비 약 45% 상승했습니다. 분양가가 "평당 3천만 원 시대"로 진입한 배경이 바로 이것입니다.
시장이 침체되어도 새 아파트 분양가가 잘 내려가지 않는 이유, 이제 이해가 되시죠?
2. 일반 상품과 집은 이렇게 다릅니다
그런데 수요와 공급만으로 집값이 이렇게까지 출렁일까요? 주택에는 다른 상품과 근본적으로 다른 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 움직일 수 없습니다. 강남에 수요가 몰려도 노원의 아파트를 강남으로 옮길 수 없습니다. 지역별 불균형이 자동으로 해소되지 않죠.
- 오래 갑니다. 전국 주택 약 2,100만 호 중 연간 신규 입주는 40~50만 호, 전체의 약 2%뿐입니다. 단기 공급 증가로 가격을 조절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 모두 다릅니다. 같은 아파트 단지 안에서도 층수, 향, 뷰에 따라 가격이 다릅니다. 완전한 대체재가 없어 가격 비교 자체가 어렵습니다.
- 거래 비용이 큽니다. 취득세, 등기비용, 중개수수료, 이사비용. 이 비용이 빈번한 거래를 막고, 시장의 가격 조정을 느리게 만듭니다.
- 팔기 싫어합니다. 집주인들은 매수 가격 이하로 파느니 차라리 전세로 돌리거나 매물을 거둬들입니다. 이것이 하락장에서도 가격이 쉽게 내려가지 않는 가격 하방 경직성의 정체입니다.
3. 한국만의 특수한 메커니즘
아파트 공화국
한국 주택 중 아파트 비율은 약 63%, 신규 공급에서는 80% 이상입니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수치죠.
이 '아파트 공화국'에서는 가격 정보가 매우 투명하게 비교됩니다. 한 단지의 신고가 거래가 주변 단지 가격 기대에 즉시 영향을 미칩니다. 아파트에 국민 재산이 집중되다 보니 아파트 가격 = 국민 자산 = 정치적 민감도가 되어버렸습니다.
2023~2024년 전세사기 사태 이후에는 '빌라왕 트라우마'까지 더해졌습니다. "빌라 전세 = 내 돈 잃는 길"이라는 공포가 아파트 전세 수요를 폭증시키며 아파트 가격을 더 밀어올리고 있습니다.
전세 제도: 레버리지의 양날의 검
전세(傳貰)는 세계에서 유사 사례를 찾기 어려운 한국 고유의 제도입니다. 쉽게 말하면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무이자 대출을 해주는 구조입니다.
이 구조가 만드는 갭투자가 핵심입니다. 전세가율이 70%라면 집값의 30%만 있으면 집을 살 수 있습니다. 유동성이 풍부할 때 이 레버리지가 투자 수요를 폭발적으로 늘립니다.
하지만 반대로 움직이면? 2022~2023년 집값 하락기에 역전세(매매가 < 전세금) 현상이 터지며 전세 사기 피해가 폭증했습니다. 전세는 상승장의 가속기이자, 하락장의 뇌관입니다.
그리고 전세가율은 지역마다 천차만별입니다. 서울은 54~57%로 갭투자 진입장벽이 높은 반면, 지방 소도시는 80~90%로 쉬워 보이지만 인구 유출로 역전세 위험이 훨씬 큽니다.
4. 금리와 정책이라는 외부 변수
금리: 가장 강력한 리모컨
금리는 부동산 시장의 리모컨입니다. 수요와 공급 모두를 동시에 움직이는 유일한 변수죠. (일본 금리 0.75% 시대, 글로벌 자본 이동의 의미도 함께 읽어보세요.)
- 금리 하락 → 대출 이자 감소 → 구매력 증가 → 수요 증가 → 집값 상승
- 금리 상승 → 대출 이자 증가 → 구매력 감소 → 수요 감소 → 집값 하락
실제로 어떻게 작동했을까요?
| 시기 | 기준금리 | 서울 아파트 | 핵심 이벤트 |
|---|---|---|---|
| 2020~2021 | 0.5% | +40% 급등 | 사상 최저 금리 + 유동성 폭발 |
| 2022~2023 | 3.5% | -15~18% 하락 | 1년 반 만에 3%p 급등 |
| 2024 | 3.0% | +3~5% 강보합 | 핵심지만 회복, 양극화 |
금리가 1%p 오르면 서울 아파트 가격은 6~12개월 시차를 두고 3~5% 하락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 3억 원 대출 시 연 4%와 7%의 월 이자 차이는 약 75만 원입니다. 이 차이가 매수 결정을 바꿉니다. 환율 변동도 금리에 영향을 미치는데, 이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환율이 오르는 이유 4가지를 참고하세요.
공급 측면에서도 금리는 결정적입니다. 금리가 오르면 건설사의 PF(프로젝트파이낸싱) 비용이 급증하여 착공 자체가 멈춥니다. 2022~2023년 PF 위기로 다수 건설사가 부도 위기에 처한 것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정책: 풍선을 누르면 다른 곳이 부풀어 오릅니다
한국 부동산 시장은 정부 정책의 영향을 유독 크게 받습니다. LTV·DSR 규제, 취득세·양도세, 다주택자 중과, 분양가 상한제 등 도구도 다양합니다.
2025~2026년 현재 가장 큰 변수는 스트레스 DSR입니다. 금리 상승 시나리오를 반영한 가산금리를 적용하여 대출 한도를 추가 축소하는 규제인데, 연봉 5천만 원 직장인이 서울에서 집을 사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진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LTV보다 DSR이 먼저 걸리는 '현금 부자의 시장'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정책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특정 지역 규제를 강화하면 인근 비규제 지역으로 수요가 이동하는 풍선 효과가 발생합니다. 2017~2021년 25차례 부동산 대책에도 서울 집값이 오른 것이 그 증거입니다. 수요·공급의 근본 불균형이 해소되지 않으면 정책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핵심 정리
- 집값 = 수요(인구·소득·심리) x 공급(인허가·원가) x 외부변수(금리·정책)입니다. 어느 하나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 단기에는 심리와 유동성, 장기에는 소득과 인구 구조가 가격을 결정합니다. 패닉바잉도, 패닉셀링도 결국은 펀더멘털로 수렴합니다.
- 지역을 세분화하세요. '부동산'이라는 단어로 서울 강남과 지방 소도시를 묶지 마세요. 서울 주택보급률 93~94%와 전국 103%는 전혀 다른 시장입니다.
다음 편 예고
2부에서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한국만의 제도, 전세의 경제학을 깊이 파헤칩니다. 전세가 어떻게 탄생했고, 왜 집값을 올리는 엔진이자 하락의 뇌관이 되는지, 그리고 2024년 전세사기 이후 변화한 시장의 새 질서를 다룹니다.
※ 면책조항: 본 글은 경제 교육 목적으로 작성된 정보성 콘텐츠입니다. 부동산 투자 및 거래는 개인의 상황에 따라 다르므로, 중요한 결정은 반드시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세금 계산은 추정치이며, 정확한 세액은 세무사에게 문의하세요.